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온 세상이 흐릿하게 일렁거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바람은 더위를 데우는 일에만 몰두하는 듯했다. 나뭇잎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움직임을 멈췄다. 이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내 몸도 마치 여기에 붙박힌 것 같았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노트는 손을 타지 못한 채 페이지를 고스란히 펼치고 있었다. 펜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도, 계획도, 심지어 움직여야 한다는 의지도 덥게 눌려 사라졌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잠깐의 시원함을 줬지만, 금세 몸 안에서 다시금 열기로 변했다. 모든 게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문득, 스스로에게 작은 허락을 내렸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자연스러웠다. 이 더위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나도 그 속에 잠시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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