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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겨울

by 망인생 2024. 10. 14.

이곳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얼음이 녹아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보이지 않는 차가운 그림자가 공기 속에 깃들어,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천천히 몸을 휘감았다.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차디찬 숨결이 사람을 잠식해갔다.

나는 그곳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회색빛 거리, 바람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꿰뚫고 지나가면서 내 안에 머물렀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끝까지 차가움이 내려앉았다. 가슴은 바늘로 찔린 듯 아렸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지만, 나만 그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찬 기운은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벽난로의 불이 아무리 타올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추위는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영혼에까지 닿아 있었다. 방 안에 서서히 고여가는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점점 더 깊은 무언가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단지 추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홀로 남겨진 고독,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한결같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차가웠다. 나무는 잎을 떨군 채 껍질만 남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이곳에 따스함은 없다. 그저 무한히 펼쳐진 추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매일 반복되는 질문 속에서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갔다. 이 추위는 단순한 계절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감정, 그리고 과거의 상처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이 날카로운 얼음처럼 내 안을 자르고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불안과 두려움이 이 겨울 속에서 나를 삼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차가운 공허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추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 자신의 일부분이었다. 잿빛 겨울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 고독과 불안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추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차가운 고요 속에서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 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끝나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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