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한 날

망인생 2025. 6. 9. 22:18



아침이 왔다는 건 알았다. 창밖에서 햇살이 벽지를 어루만졌고, 새소리가 커튼 사이로 들어왔다.
하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뜨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안 일어나도 되는 날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게, 오늘을 정한 이유였다.
일어나지 않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누구에게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기로.

배가 고팠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났지만 외면했다.
괜찮다. 오늘만은 도망쳐도 된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세상은 알아서 굴러간다.

마치 내가 빠져 있어도 되는 기계처럼.
조금은 슬픈 듯, 조금은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이불 안은 따뜻했고, 마음은 흐물거렸다.
기대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가 옆에서 말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없었고, 그런 말도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저 쉰다. 그것만 해도 잘한 거야.”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세상은 오늘 하루, 나 없이 돌아가게 두기로 했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잠시 후, 아주 작은 숨결처럼 평온한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다.